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김춘수, 「꽃」
요즘 Claude Code를 쓰면서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다. 지금 이 글도 Claude Code와 함께 쓰고 있다. 주제를 던지면 관련 자료를 웹에서 찾아오고, 사례를 정리하고, 초안을 작성한다. 여러 문서를 모아 명세서 틀을 잡기도 하고, 다운로드 폴더에 쌓인 파일들을 날짜별로 분류하기도 하고, 링크 몇 개를 던져주면 핵심만 요약해준다.
코드라고는 한 줄도 작성하지 않는 작업들이다. 그런데 매번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Code 맞아?”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동시에 그 의미의 경계를 긋기도 한다. Code라는 이름이 붙은 순간, 이 도구는 코드를 다루는 것으로 규정된다.
Anthropic도 같은 고민을 했다.
Anthropic의 선택: Code에서 Agent로, 그리고 Cowork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Claude Code. 터미널에서 돌아가는 CLI로 시작했다. 파일을 읽고, 편집하고, 명령을 실행하고, 테스트를 돌린다. 이름 그대로 코드를 다루는 도구였다.
Claude Code SDK. Claude Code의 기능을 라이브러리로 제공해서 개발자들이 자신만의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게 했다.
Claude Agent SDK. 여기서 첫 번째 이름 변경이 일어난다. Code SDK가 Agent SDK가 됐다. 마이그레이션 가이드까지 별도로 제공할 정도로 공식적인 리네이밍이다. Agent라는 이름은 더 넓은 가능성을 담는다. 파일을 읽고, 명령을 실행하고, 웹을 검색하는 AI 에이전트. Code라는 단어가 주던 좁은 인상에서 벗어났다.
Claude Code on Desktop. Claude Desktop 앱에서 Claude Code를 쓸 수 있게 됐다. Chat / Code 두 가지 모드로 구분했다.
Claude Cowork. 그리고 최근, Desktop 앱에서 Code가 Cowork로 바뀌었다. Chat / Code에서 Chat / Cowork로.
공식 문서에서는 “메시지를 동료에게 남기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한다. 코드를 짜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다운로드 폴더 정리, 스크린샷에서 비용 정보 추출해서 스프레드시트 만들기 같은 일상 작업도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Anthropic도 이 방향을 의식하고 있다. Claude Opus 4.5 발표에서 Claude Code의 활용 사례로 “deep research and working with slides and spreadsheets” 같은 일상 업무를 언급했다. Code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공식적으로도 코딩 외의 작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름이 인식을 가두는 방식
Rory Sutherland가 《Alchemy》에서 재밌는 사례를 소개한다. 파타고니아 이빨고기(Patagonian Toothfish)라는 생선이 있었다. 맛은 좋은데 팔리지 않았다. 이유는 이름이었다. 누군가 “칠레산 농어(Chilean Sea Bass)“로 바꾸자 같은 생선이 프리미엄 메뉴가 됐다.
시리얼 박스에 “고대 곡물(ancient grains)“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더니 소비자들이 2온스 적은 제품에 40센트를 더 지불했다는 연구도 있다. 고대 곡물이라는 단어가 고대의 지혜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제품 이름은 사용자의 기대치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 기대치는 제품의 활용 범위를 제한한다.
개발자가 이름 짓기에 시간을 쓰는 이유
Phil Karlton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컴퓨터 과학에서 어려운 것은 딱 두 가지다: 캐시 무효화와 이름 짓기”
농담처럼 들리지만, 코드를 작성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인다. 함수명을 뭐라고 지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함수를 작성하는 시간보다 길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이름은 미래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getUserData가 적절해 보여도, 나중에 이 함수가 캐시에서도 데이터를 가져오고 API에서도 가져오게 되면 이름이 어색해진다. 좋은 이름은 시간이 흘러도 살아남는다.
Domain-Driven Design(DDD)에서는 이 문제를 **유비쿼터스 랭귀지(Ubiquitous Language)**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개발자와 도메인 전문가가 같은 언어를 쓰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커머스 도메인에서 “주문”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코드에서도 Order라고 부르고, 기획서에서도 “주문”이라고 부르고, 회의에서도 “주문”이라고 부른다. Purchase나 Transaction이나 OrderInfo가 아니라 그냥 Order. 번역 과정이 사라지면 의사소통 비용이 줄어든다.
가구 이커머스 회사에서 테이블을 WoodenFurnitureItem이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 회의에서 “그 WoodenFurnitureItem 재고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Table이다.
코드 속 이름이 현실의 언어와 일치할 때, 시스템은 이해하기 쉬워진다. 제품 이름도 마찬가지다. Claude Code라는 이름이 현실의 활용 범위와 일치하지 않을 때, 혼란이 생긴다.
성공한 리네이밍, 실패한 리네이밍
던킨도너츠 → 던킨. 도넛 인기가 식어가고 커피 프랜차이즈와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할 때, 도넛을 과감히 뺐다. 카페 인테리어를 도입하고 커피 메뉴를 늘렸다. 매출이 반등했다.
애플 컴퓨터 → 애플 (2007).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컴퓨터라는 단어를 뺐다. 지금 애플이 만드는 제품 중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Federal Express → FedEx (1994). 너무 많은 서비스에 각각 다른 이름을 붙여놓았던 혼란을 정리했다. 단일한 브랜드 네임과 로고로 통합한 후, FedEx 로고는 최고의 로고 중 하나가 됐다.
반면 실패 사례도 있다.
Twitter → X. 리브랜딩 1년이 지났는데 미국인의 절반(49%)이 여전히 Twitter라고 부른다. 매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55%. 설문조사에서 42.9%가 부정적 감정을 표현했고,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9.8%에 그쳤다. X라는 이름은 문장 속에서 눈에 띄지 않고, 오타처럼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페이스북 → 메타 (2021). 페이스북은 하버드 학생 디렉토리 “face book”에서 시작한 이름이다. 사람들의 얼굴과 프로필을 모아놓은 곳. 이름이 제품의 본질을 담고 있었다. 메타버스 사업을 키우겠다며 메타로 바꿨지만, 실제 제품은 그대로다. 이름만 미래를 향하고 제품은 현재에 머물러 있다.
HBO Max → Max → HBO Max 복귀. HBO를 떼고 Max로 갔다가 프리미엄 이미지가 사라졌다는 비판에 다시 HBO Max로 돌아왔다.
좋은 리네이밍의 조건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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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의 실제 변화와 함께 간다. 던킨은 도넛에서 카페로 사업 방향을 바꾸면서 이름을 바꿨다.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컴퓨터를 뺐다. Claude Code도 실제로 코드 작업 외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기에 이름 변경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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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자산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FedEx는 Federal Express의 약어다. 던킨도 던킨도너츠에서 앞부분을 살렸다. Claude Agent SDK도 Claude라는 핵심 브랜드는 유지하면서 Code만 Agent로 바꿨다. 반면 Twitter를 X로 바꾼 건 수십억 달러의 브랜드 자산을 그냥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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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름이 더 넓은 가능성을 담는다. Code보다 Agent가 더 많은 걸 할 수 있어 보인다. 던킨은 도넛만 파는 곳이 아니라 뭔가 더 다양한 메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며
CLI 도구를 쓰면서 네이밍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은 처음이다. Code라는 단어가 붙어있으니까 무의식적으로 코딩 관련 작업에만 쓰려고 했던 것 같다. 단어 하나가 상상력을 가둔다.
Anthropic이 Agent SDK라는 이름을 선택한 건 제품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코드를 작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에이전트를 만드는 도구. Cowork도 같은 맥락이다. 코드가 아니라 협업.
예외도 있다. ChatGPT는 Sam Altman 본인이 “끔찍하다”고 인정한 이름이지만, 압도적인 제품력이 이름의 약점을 덮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이 ChatGPT일 수는 없다.
좋은 이름은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본질을 담아낸다. Claude Code가 Claude Agent로, 그리고 Cowork로 변해가는 과정.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참고 자료
- Cowork: Research Preview
- Claude Code on Desktop
- Claude Opus 4.5
- Claude Agent SDK Overview
- 샘 알트먼 “챗GPT 이름, 끔찍하다고 생각해”
- The Surprising Consumer Psychology of Product Names
- Why can’t we stop calling X, Twitter?
- 브랜드 네임의 회귀
- 주요 브랜드 리브랜딩 사례 모음 (2024년)
- Two Hard Things - Martin Fowler
- Ubiquitous Language - Martin Fowler
- Ubiquitous Language and Naming - Enterprise Craftsman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