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쉬워질수록, 우리는 글을 잊는다
ChatGPT가 나온 지 2년이 넘었다. 그동안 글쓰기가 많이 쉬워졌다. 나도 업무 메일이나 문서 초안을 AI에게 맡길 때가 많아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제 Claude한테 시켜서 쓴 보고서, 지금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나는가?
글을 쓰기가 쉬워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쓴 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인지 부채라는 개념
MIT Media Lab의 Nataliya Kosmyna 연구팀이 2025년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Your Brain on ChatGPT”라는 제목인데, 54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서 4개월간 에세이 작성 과정을 추적했다.
- ChatGPT 사용 그룹
- 검색엔진 사용 그룹
- 도구 없이 직접 쓴 그룹
결과가 좀 씁쓸하다. LLM 사용자의 83%가 자신이 방금 작성한 에세이의 내용을 제대로 인용하지 못했다. 반면 도구 없이 글을 쓴 그룹은 거의 완벽하게 기억했다.
연구진은 이걸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고 불렀다. 개발자들이 쓰는 ‘기술 부채’랑 비슷한 개념이다. 단기적으로 편하자고 장기적인 인지 비용을 쌓아가는 것.
“LLM 그룹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소유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작성 직후에도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 MIT Media Lab 연구팀
EEG 뇌파 측정 결과도 비슷했다. ChatGPT 사용자들은 기억 인코딩, 주의력,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 활성화가 낮았다. 연구진 표현을 빌리면 “뇌가 문자 그대로 꺼진 상태”였다고.
더 걱정되는 건 이게 습관이 된다는 점이다. LLM을 쓰다가 나중에 도구 없이 글을 쓰라고 하면, 처음부터 도구 없이 쓴 사람만큼 집중하지 못했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역설
Z세대와 알파 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부른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랑 같이 자랐으니까. 그런데 최근 연구들을 보면 좀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EU 집행위원회의 국제 컴퓨터 및 정보 리터러시 연구(ICILS)에 따르면, 14세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는 2018년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43%의 학생이 제한적인 디지털 역량만 갖추고 있다고.
University of Stavanger 연구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Z세대의 약 40%가 손글씨 의사소통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학교수들은 학생들이 복잡한 문장을 피하고 소셜 미디어 포스팅처럼 짧은 문장만 쓴다고 한다.
| 세대 | 특징 | 역설 |
|---|---|---|
| Z세대 |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 사용 | 로컬 파일, 폴더 구조 같은 기본 개념 이해 부족 |
| 알파세대 | AI와 함께 성장 | 글쓰기·읽기 능력 저하 우려 |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것과 글을 이해하고 쓰는 능력은 다른 문제인 거다.
AI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확인을 안 한다
CHI 학회에서 발표된 연구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AI 리터러시가 높은 사용자, 즉 LLM 작동 방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사실 확인을 덜 한다는 거다.
역설적이지 않나. “나는 AI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니까 잘 쓸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오히려 검증을 게을리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MIT 연구진이 한 가지 힌트를 줬다. 처음에 도구 없이 글을 쓴 후 나중에 LLM을 사용한 그룹은 뇌 활성화가 급증했다. 이들은 AI를 자신의 아이디어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증강’하는 도구로 쓴 거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 원칙 | 실천 방법 |
|---|---|
| 먼저 생각하기 | 프롬프트 쓰기 전에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한다 |
| 비판적 검토 | AI 출력물을 그대로 쓰지 않고 고친다 |
| 체계적 관리 | 생성한 콘텐츠를 정리하고 주기적으로 다시 본다 |
| 독립적 연습 | AI 없이 글 쓰는 연습을 계속한다 |
나도 요즘 이렇게 해보려고 한다. 일단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AI한테는 다듬는 걸 맡긴다. 순서가 바뀌면 내 글이 아니라 AI 글이 되니까.
마무리
LLM 덕분에 글쓰기가 쉬워진 건 맞다. 하지만 쉬워진 만큼 뭔가를 잃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글쓰기가 쉬워진 시대에,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글을 기억하는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가끔은 AI 없이 직접 써보는 것.
이 글도 Claude 도움을 받아 썼다. 하지만 초안은 내가 먼저 잡았고, 구조도 내가 정했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기억난다. 아마도.
참고
- Kosmyna, N. et al. (2025). “Your Brain on ChatGPT: Accumulation of Cognitive Debt when Using an AI Assistant for Essay Writing Task.” MIT Media Lab. Link
- “The Trap of AI Literacy.”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2025). Link
- International Computer and Information Literacy Study (ICILS) Report. EU Commission (2024).
- University of Stavanger Research on Handwriting Decline in Generation Z (2025).